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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7, 2015

박근혜는 연산군?···“대통령하기 싫었을 것”

박근혜 대통령의 심리상태가 조선 왕 연산군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분석인데요. 

심리학자인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의 말입니다. 김 소장은 지난달 29일 게재된 프레시안 인터뷰(▶“박근혜는 연산군…대통령 하기 싫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은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라며 “대통령이 되고 싶거나 대통령 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표를 얻을 힘이 있기 때문에 극우 보수 세력이 ‘정치 상품’으로 키웠고 대통령까지 됐다고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개인은 하기 싫은 배역을 맡아서 억지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했죠.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청와대 문건 파동, 성완종 리스트 파문 등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한 걸 두고 내놓은 분석입니다. 김태형 소장은 문제가 발생하면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측근들을 오히려 감싸안는 박 대통령의 정치 행위를 ‘심리학적·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정치적 분석 만으로는 대통령의 ‘행태’가 이해 안되기 때문이죠. 여러 사례를 한번 보시죠.

“실수에도 다 뜻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11월25일 18대 대선후보 등록 기자회견에서 “저는 오늘로 지난 15년 동안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눠왔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사퇴합니다?’ 무의식을 반영한 듯한 이 말은 말해 화제가 됐습니다. 김 소장은 “그런 말이 그냥 실수로 쉽게 나올 수 없다. 프로이트는 ‘실수에도 다 뜻이 있다’고 했다”면서 “대선에 출마하기도, 대통령 하기도 싫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11월25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대통령 후보등록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저는 오늘로 지난 15년 동안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눠왔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라고 말했다. 회견을 지켜보던 기자들과 선거캠프 인사들이 술렁대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 부분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준비된 원고대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합니다”라고 다시 말했다. | 박민규 기자


이런 분석은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욕이 강하다”는 세간의 평과 배치되는데요. 김 소장은 “심리학자가 보기에 박 대통령은 권력욕이 없으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자신의 기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극우 보수 세력의 설득이 없었다면, 정치권에 다시 발을 디딜 사람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연산군이다”
김 소장은 박 대통령과 조선 10대 왕 연산군의 심리상태가 비슷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조선왕조 성종의 장남인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는 사약을 먹고 숨졌습니다. 김 소장은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라는 책을 인용하며 “(연산군이) 생존 위협에 시달리며, 세상에 대한 불신감·정서 불안·애정 결핍·자신감 결여·방어적 태도·의존심·심한 분노 감정 등을 갖게 됐다. 당시 수구 보수 세력인 훈구파가 그런 연산군을 왕으로 옹립해 이용했다”고 말합니다. 연산군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한편,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에게 지독히 의존”한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키게 해 반대파를 물리쳤습니다.
1974년 8월19일 서울 현충원에서 하관에 앞서 고 육영수 여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박지만씨, 박근혜 대통령, 박근령씨.(왼쪽부터)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9년 11월3일 서울 현충원에서 국장으로 치뤄진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에서의 박근혜 대통령과 박지만씨(앞 줄 오른쪽부터)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22살에 어머니를 잃고, 5년 뒤 아버지마저 잃었습니다. 김 소장은 “무서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경우다. 기본적으로 겁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권좌에 있으면서도 비판세력을 두려워한다”는 건데요. 김 소장은 “연산군이 할머니인 인수대비와 친인척에게 의존하다 자신의 인생을 망쳤는데, 박 대통령 역시 최측근에게만 의존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지난해 ‘비선 실세’ 의혹에 휘말린 정윤회씨를 비롯해 청와대 김기춘 전 비서실장,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행정관 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심리적으로 아예 믿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다”고 분석합니다. 


박 대통령의 말실수
박근혜 대통령은 말을 더듬거리거나 앞뒤가 맞지 않은 모습을 종종 내보였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뿐 아니라, 사안을 대하는 태도도 긍정적이지 않다는 신호”라면서 “이미 패닉 상태(공황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김 소장은 말합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했습니다. 코너에 몰리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듯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책임을 져야할 참모들을 내치지 않고 오히려 감싸안았죠. 이 때문에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부터 ‘일탈 정부’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개인정보 불법열람 등 각종 스캔들이 발생할 때마다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며 발뺌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 ‘개인적 일탈’ 논리를 내세운 것은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졌을 때인데요. 또한 청와대는 조오영 행정관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 아들로 지목된 채모군 인적사항 열람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자 “개인적 일탈행위”라고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이 걸린 문제를 남의 일처럼 치부한 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말 ‘개인적 일탈 행위’로 대선개입 사건을 방어하기 어렵게 되자 안보를 내세워 정국을 돌파했습니다. 당시 천주교 시국미사에서 나온 ‘연평도 포격 비호’ 발언을 빌미로 공안몰이에 나섰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시 천주교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 발언의 본질인 국가기관 대선개입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박 대통령, 취임 후 최고 강경 발언… 반대세력에 ‘선전포고’)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동안 행적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발생 하루 뒤인 4월17일 진도체육관을 방문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다음날에야 찾아온 박 대통령에게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논란이 계속되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해 7월 국회 운영위에서 대통령의 행적을 전했습니다. 당시 발언 내용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19분쯤 보도를 통해 사고를 인지했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오전 10시 박 대통령에게 사고 사실을 서면으로 처음 보고했습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유선과 서면으로 24차례 보고를 받았지만 대면(對面)보고를 받거나 대책회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국가적 재난 상황을 보고받고도 대통령이 7시간 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입니다. 

일부 언론과 온라인 매체에서는 비선 라인 접촉설을 보도했고, 일본 산케이신문은 박 대통령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점을 사생활과 연관시켜 대통령 모욕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미스터리 7시간 그 전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17일 오후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진도실내체육관 단상에 올라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자 한 실종자 가족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라며 애원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가 이틀 동안 한 일이 무엇이냐면서 강력하게 항의했고 고함과 욕설이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 경호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통령 주변을 세겹 네겹으로 에워싸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태형 소장은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대통령 실종 7시간’이 정신적 붕괴를 진정시킨 시간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단 상황을 피하고 본 것이다. 사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일 처리를 측근에게 맡긴 후 7시간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날의 행적을 밝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윤회 문건 파동
세월호 참사 후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이 연속 낙마하며 인사참사는 이어졌습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 논란에 자진사퇴했고,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도 친일 역사인식 등의 문제로 낙마했습니다. 지난해 연말은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으로 지나갔는데요. 지난해 11월28일 세계일보가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 문건을 보도하면서 논란이 시작됐죠.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 출신인 정씨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청와대 측근 비서관 3명(이재만 총무·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번졌고, 박 대통령 친동생 박지만씨까지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박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씨에 대해 “국정 근처에도 온 적 없다”, 3인방은 “교체할 이유가 없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결국 정윤회씨 논란은 박 대통령의 폐쇄적 국정운영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 거취를 두곤 “당면한 현안이 많이 있어서 그 문제들의 수습을 먼저 해야 하지 않겠나 해서, 그 일들이 끝나고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비서실장은 정말 드물게 보는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적쇄신은 일축하고, 유감 표명 정도로 대신한 박 대통령 입장을 두고, ‘집권 3년차’ 시작부터 여론에 밀리지 않겠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낸 것이란 지적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대적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여론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죠.(▶[박근혜 정부 2년]인사파동·국정원 대선개입·비선 농단… 2년 내내 ‘정치 실종’인적쇄신 거부… 국민에 ‘항명’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12일 신년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생방송되고 있는 서울역 대합실 TV 화면에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얼굴이 비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성완종 리스트’ 파문
지난달 9일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새누리당 전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과 마지막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 측근에 대선자금 등을 전달한 사실을 유언처럼 남기면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정치권을 강타했습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 담긴 8명은 박근혜 정권의 전·현직 실세였는데요. 무엇보다 친박계 핵심들이 대거 연루되면서 여론의 화살은 박 대통령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제3자 화법’으로 “철저한 수사”만 이야기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자금 의혹인데도 남의 일처럼 이야기한 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측근’이라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부패 척결 발언을 하더니 지난달 15일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한번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대대적인 ‘사정 광풍’을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모두와 정권 핵심들이 비리 의혹에 휩싸인 ‘현재’에 대한 유감 표명은 없었습니다. 현재 상황을 자신과는 무관한 일처럼 이야기한 박 대통령 화법은 또다시 논란이 됐습니다. 리스트에 지목된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 탄생 주역들이고, 이들이 금품을 수수했다면 대선 등 정권 탄생 과정에 쓰였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데도 과거 정부까지 포괄하는 부패 척결을 거론하면서 ‘남의 일’처럼 말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지난달 16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뒤로하고 남미순방을 떠났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개선을 저울질한 반둥회의 60주년 행사는 불참한 채 ‘도피외교’를 떠난 것인데요.(▶[이대근의 단언컨대]아프다는 박근혜의 야당 공격) 귀국한 뒤에는 4·29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신 읽은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측근들이 줄줄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한 사과는 외면한 채 오히려 노무현 정권 말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특별사면을 비판했습니다. 지난 4일에는 공식업무에 복귀하자마자 ‘성완종 리스트’의 2012년 대선자금과 관련한 의혹과 진술들이 검찰 조사에서 나오고 있음에도 “사면이 비리사슬의 고리”라며 파문의 근원으로 다시 과거 정권을 지목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오전 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으로 귀국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태형 소장은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박근혜는 지도자로 유래가 없는, 정말 특수한 유형이다”라면서 “아마 극우 보수 세력은 ‘박근혜’라는 정치 상품이 없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재집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권을 잡은 극우 보수 세력 자체가 국가 철학이 없다”면서 “통치 철학의 부재가 결국 음모와 공작설 등 온갖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철학이 없다 보니, 일 역시 투명하게 집행되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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