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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y 15, 2015

강기훈의 무죄, 이제 정의의 심판이 시작돼야 한다

강기훈의 무죄는 무책임한 사법부를 고발하고 있다

처음부터 조작된 진실을 밝혀내는데 무려 24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런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사법부에 정의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 통탄스럽다. 이제부터 언론은 ‘유서대필사건’이 아니라 ‘유서대필조작사건’이라고 명명해야 한다. 조작의 희생양 강기훈은 병마에 시달리며 잃어버린 세월과 억울함에 시들어가고 있다.

조작의 직접적 가해자인 검사와 판사들은 침묵이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죽음의 굿판’ ‘어둠의 세력들’ 운운하며 무책임한 말을 대서특필하며 여론몰이를 주도했던 조선일보는 사과나 정정은 없고 오히려 ‘당시 법관들도 양심적으로 판결했을 것’이라고 한가하게 변명해주고 있다. 자신을 위한 변명인지 진정으로 그런 엉터리 판결, 진실조작의 축을 이룬 사법부를 옹호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분식시키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김기설 씨의 유서 대필 및 자살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기소되 처벌받았던 강기훈 씨. 대법원은 14일 재심 판결에서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사진=노컷뉴스
 
이 사건을 단순히 강기훈이 억울하게 검찰의 공안몰이의 희생양, 권력의 정권돌파용 수단 정도로 과거화, 타자화 시키버리는 것은 그 의미를 반감시키는 것이다.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을 흔히 프랑스의 대표적 진실조작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한다.

진실조작이란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결과와 영향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났는지에 대한 언론의 천착은 보이지않는다. 이런 불행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면 두 사건의 결과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드레퓌스 사건은 1884년 프랑스 군부의 비밀정보가 독일 대사관으로 흘러들어가면서 그 정보제공자가 ‘알프레드 드레퓌스’라는 프랑스 유대인 장교라고 단정하면서 시작됐다. 단서는 한 프랑스 정보장교가 독일대사관 무관부에서 우연히 본 문건의 ‘D'와 비슷한 글자가 있었다는 보고였고, 이를 토대로 프랑스 육군참모본부에 근무하는 장교들의 신원 검토를 한 끝에 드레퓌스라는 이름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사실상 수사는 멈췄고 군부고위층은 그가 진범으로 단정하기에 이른다.

드레퓌스는 즉각 체포됐다. 그는 자신이 졸업한 육군사관학교에서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육군대위 견장이 뜯겨지고 구금됐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유대인이 국가기밀을 독일에 팔아먹었다”라는 뉴스를 연일 톱으로 보도했다.

온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군법재판이 열렸다. 드레퓌스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누구도 듣지않았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한 드레퓌스에게 프랑스 군부는 ‘유죄를 시인한다면 파리 인근 감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회유를 했지만 그는 끝까지 타협하지않고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결국 종신형에 처해져 ‘악마의 섬’이라는 유형지로 보내졌다.

이 사건후 18개월만에 진범은 따로 있다는 제보가 드레퓌스 상관인 브외스테후르 장군에게 날아든다. 내부 자체조사결과 페르디낭 에스터하지 소령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를 토대로 브외스테후르 장군은 참모총장에게 재수사를 요청하지만 거부당했다. “유대인이 진범으로 지목되어 끝난 사건이며 아무도 이 재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답변이었다.

진실조작에 대한 소문은 프랑스 사회의 여론을 분분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칼럼이다. 프랑스 대문호 에밀 졸라는 당시 로로르라는 신문에 위의 제목으로 칼럼을 게재하여 ‘정의를 추구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각성과 정부고위관리들의 부정과 무책임한 태도를 질타하는‘ 격문을 기고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여론은 진실을 밝히라는 여론이 강력하게 형성된다. 그러나 프랑스 우익 강경파들은 에밀에 대한 협박을 공공연하게 떠들어댔고 결국 그는 영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만평 고슴도치 = 조민성 화백  
 
1902년 7월12일 프랑스 대법원은 결국 드레퓌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또 다른 유대인 헤르첼은 ‘드레퓌스 사건은 자기나라가 없는 땅에서 받는 유대인의 핍박,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기자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 ‘유대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오니즘(Zionism) 창시자가 된다. 헤르첼의 시오니즘은 2차대전후 유대국가 이스라엘 건국의 초석이 됐다.

드레퓌스 사건은 대표적인 진실조작 사건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시련에서 희망을 만들어냈다. 기자 헤르첼의 웅변에 해외 수많은 유대인들의 지식과 정보, 돈이 모여들어 2천년 유랑생활을 접고 나라를 건국하는 기적을 만든 것이다.

강기훈의 유서대필조작사건은 한 개인의 인생 전체를 파멸로 이끌었다. 부도덕한 정치권력과 출세지향의 검사들, 판사들, 진실을 외면하며 정치권력에 기생하는 언론의 합작품이었다. 어디에도 정의나 진실은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진실조작 사건으로 한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권력은 수사기관, 사법부, 언론 등 하수부대를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나와 혹은 너, 우리중 누군가가 언제든지 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다.

드레퓌스 사건처럼 나라는 못세우더라도 정의를 바로세우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진실조작에 나서게 되면 개인의 영달이 보장되는 출세의 기회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수사기록과 판결에는 검사와 판사 이름이 남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어떤 형태로든 단죄가 필요하며 사과와 참회의 눈물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조작에 앞서며 여론을 왜곡시키는 언론에 대한 책임추궁도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의 심판대에 이들을 세워 한때의 영욕이 영원한 수치로 기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실도 강기훈에게 위로가 될 수 없다. 강기훈이 짓밟힌 것은 우리 국민이 한줌의 정치검사, 정치판사, 언론에 의해 짓이겨진 것이나 다름없다. 엄중한 책임추궁이 없는 곳에는 정의도 없다. 역사의 교훈이 없는 곳에는 수치의 역사가 반복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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