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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rch 9, 2015

배후? 이득을 보는 자 아니겠습니까

중동 4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전 도착해 곧바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 2015.3.9 / 청와대 제공

김기종 씨 범행 동기 밝히자는데 배후·종북 이야기만 난무
종북몰이 게임, 승자는 결국 미국에 돌아가도록 되어 있어
국정 주도권 잡기 위해 재야세력 궁지 몰고 인권 침해 안돼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97

요즘 대통령의 목소리에 생기가 넘칩니다.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그동안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거나, 아니면 독기 서린 속어를 쏟아내던 것과는 딴판입니다.
오늘 중동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세브란스병원 병실로 리퍼트 대사를 방문했을 때 당신은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내비쳤습니다. “저도 2006년 비슷한 일을 당해서 이 병원에서 두 시간 반 수술을 받았습니다. 대사님도 그와 같은 일을 당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팠습니다.” 2006년 지방선거 지원 유세 때 당신은 신촌에서 괴한에게 피습을 당했습니다. 사건 이후 선거판은 급격히 반전됐고, 당시 한나라당은 압승했습니다.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지….” 그렇습니다. 극단주의자의 칼질이 복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너무나 닮았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십시오. 이번 김씨의 칼질은 지극히 불행한 징표였습니다. 요즘 들어 이 나라엔 병적인 극단주의자의 돌출행동이 잦습니다. 지난해 12월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를 고교생이 습격한 것도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소외된 극단주의자, 곧 ‘외로운 늑대’들의 이런 돌출행동은 이 나라가 그만큼 병들었음을 보여주는 징후입니다. 분열과 불신, 불평등과 차별, 소외와 분노의 병이 그것입니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앞에서 반성하고 성찰할 일이지, 쾌재를 불러선 안 됩니다. 그런 사람라면 그 역시 정신질환을 의심받아야 합니다.
중동 4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전 도착해 곧바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의료진과 면담을 하고 있다. / 2015.3.9 / 청와대 제공
당신은 5일 중동 순방 중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신체적 공격일 뿐 아니라 한-미 동맹에 대한 공격!” 한 정신질환자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한-미 관계라면 어떻게 그걸 동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미 관계를 호도하고, 동맹의 결속력을 얕잡아보는 터무니없는 규정이었습니다. 이튿날 당신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연 어떤 목적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모든 일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배후요? 김씨가 휘두른 칼질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이 나라에선 삼척동자도 압니다. 그것이 이 땅의 자유와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바라온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 것인지 말입니다.
그런 짓의 배후가 누구냐고요?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공연히 선의로 김씨와 소통하고 지원도 한 사람들을 뒤지기보다는 김씨의 돌출행위로 득을 본 자들이 누구인지 따져보는 게 훨씬 쉽고 합리적인 방법일 겁니다.
당신의 과잉반응은 이 나라를 다시금 30~40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부 종교인들은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쾌유 기원 발레나 부채춤을 추었습니다. 대통령의 제부(여동생 남편)는 아예 자리를 깔고 석고대죄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귀국하자마자 병실부터 찾음으로써 이런 소란에 한번 더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비서실장을 보내 위로와 사의를 표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주인이 그러하니, 진돗개들은 어떻겠습니까. 경찰은 김씨와 전화통화라도 한 사람이면 불러다 닦달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가 운영했던 ‘우리마당’에서 초청 강연을 했거나 이 단체의 행사에 장소를 대여한 기관이나 개인 모두를 ‘배후’ 선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김씨가 이 단체를 20년 넘게 했으니, 거기를 거쳐간 사람이나 인연 맺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김씨가 국가보안법 사범이 되면, 선의의 지원자나 인연을 맺은 사람 모두 일단 수사 대상이 된다고 보면 됩니다. 말만 섞어도 의심을 받도록 하는 게 국가보안법입니다. 수사기관이 김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입증하기보다 보안법상 이적행위 혐의를 씌우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건 그런 까닭입니다.
중동 4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전 도착해 곧바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 2015.3.9 / 청와대 제공
김씨의 범행 동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도 전에 사건의 성격을 대통령이 규정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 규정에 맞춰 김씨 사건을 수사하고 실체를 지어내려 합니다. 칼질의 동기를 따지는 게 아니라, ‘김일성을 어떻게 보느냐’ 따위를 신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1972년 김일성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다는 ‘갓끈 전술’이란 것까지 들고나오고 있습니다. 김씨가 김일성의 이런 교시에 따라 끈 하나를 끊어 한-미-일 동맹을 날아가게 만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잘하면 부친처럼 ‘박근혜판’ 인혁당 사건이 나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본의 아니게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그런 접근의 의도와 타깃을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엊그제 공식 논평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종북 숙주’로 규정했습니다. “김기종이 7차례나 방북했고,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으로 위촉됐고, 헌법기관인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냈고, 성공회대 외래교수를 역임했는데 이 모든 것이 야당 집권 시기에 이뤄졌다.” “석달 전 그가 국회도서관 강당을 빌려 세미나를 한 것이나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한 것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원 덕이었다.” 일단 요즘 들어 위협적인 상대로 커버린 야당입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합니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정권은 야당과 비판세력을 종북의 우리 속에 가두려고 하는 듯합니다. 서경원 방북 사건을 빌미로 김대중 총재와 평민당, 그리고 재야를 친북 내통 세력으로 몰았듯이 말입니다. 꽃놀이패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따져보면 그 패의 주인은 미국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종북몰이 게임의 판돈은 미국에 돌아가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이 정부는 미국을 식민지 종주국처럼 받들고 있습니다. 야당도 종북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국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미사일방어체제 편입 등 구체적인 행동까지 나설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중국, 북한과의 갈등 또는 충돌 가능성을 감수하며, 미국 본토와 일본을 지키기 위한 방어망에 우리의 돈과 물자와 인력을 들이는 사업입니다. 지나침이 어떻게 국익의 파기가 되는지 좋은 실례가 될 겁니다.
사실 미국 정부도 부담스럽습니다. 이번 사건이 한-미 현안을 미국 쪽 의도대로 풀어가는 지렛대 역할을 하는 건 불감청 고소원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과도한 정치적 이용이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정부의 과공은 리퍼트 대사와 미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략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잃어버린 국정의 주도권을 되찾고, 야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정보기관에 무소불위의 인권침해 권한을 부여하는 따위의 일들이 그것입니다.
사골도 적당히 우려야지, 지나치게 우리면 인 성분이 많아져 뼈에 해롭습니다. 김씨의 칼질을 우리고 우리다가, 국민의 가장 큰 현안인 먹고사는 문제, 국가의 기초를 흔드는 분열과 갈등의 문제, 그리고 한-미 동맹과 국익을 해치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고 국민을 너무 얕잡아보지 마십시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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